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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종 제3회 신행수기 은상 - 두번째 인생(분당금강불교대학 2기 감사 곽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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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광사 작성일11-06-18 16:48 조회5,7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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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 고통 기도 통해 극복”
곽형두(분당 대광사 신도)

“천태종은 작지만 강한 종단이다.” 총무원장 정산 스님의 간명한 정의다.

“자기를 구제할 수 있는 근본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대조사님의 법어와 “자비로운 마음 되니 불국토가 여기로다”는 도용 종정예하의 신년법어가 소백산의 메아리가 되었다.

금은보화, 옥과 비단보다 불법을 만난 것이 가장 큰 나의 행복이다. 분당 대광사 금강불교대학 1년 과정을 수강하면서 천태종도가 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 속으로 들어와 있다. 젊은 노인 되어 빈 호주머니 차고 거리로 내몰리는 마음이 더욱 시리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生存之强)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강하다.’(自勝者强) 요즘의 나의 화두이다. 실패한 회사원이라는 자기반성 속에는 불안의 그늘과 자신감의 결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야구에 비유한다면 ‘9회말 2아웃’ 상태. ‘루저(Loser)’라는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 ‘마이너스 인생’이라는 자괴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인과법(因果法).’

결국은 ‘모두가 내 탓이다’라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혹독한 겨울철 눈바람 속에서 더욱 눈부신 인생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힘찬 의지와 꿈을 곧추 세우며 다진다.

‘하늘이 노한 것은 피할 수가 있어도 자신이 잘못한 것은 피할 수 없다.’ 모질고도 준엄한 추위가 나의 잘못을 질타하는 죽비다.

5년 전 거칠게 부는 회오리바람을 평범한 나는 비껴갈 수 없었다. 20여 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접은 뒤 방황의 계절을 보냈다. 내가 가진 에너지와 지성과 지혜로움이 폐기처분된다는 것에 나는 한숨을 자근자근 삭이는 시절을 겪었다.

지난날의 내 생은 따뜻한 온실 속의 식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오랜 병환 속에 계셨던 아버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곧 아버님 기일이다. 벌써 4주기가 된다. 아직도 아버님 생각에 목이 멘다. 참 못난 자식이 되어 버린 탓이다.
아버님은 생전에 서울의 명문대학을 나와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장남 자랑 하심을 좋아하셨던 터라 더 죄송스럽다. 얄팍한 공무원의 월급으로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의 생계와 자식들의 뒷바라지까지 당신 혼자의 몸으로 책임지셨다. 서울 유학시절 단 한 번이라도 하숙비와 용돈을 늦게 보내 주신 적이 없었다. 제가 고향에 간다고 말씀드리면 아버님은 ‘두야(저를 이렇게 부르심) 온다는 데 맛있는 것 장만하라’고 어머님께 성화를 부리셨다. 오죽하면 누이들이 아들만 자식이냐고 했을까. 기대가 크셨던 만큼 실망감을 안겨 드린 큰 불효를 저질렀다.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혼자 임종을 했다는 것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모셔 놓은 뒤 가족들이 장례준비 차 잠깐 자리를 비운 동안이었다. 십념왕생(十念往生)을 하지도 못했으며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못 드렸다. ‘좀 손해 보고 살아라’ ‘위를 쳐다보지 말고 내려다보고 살아라’ ‘너무 돈에 욕심 부리지 마라’ ‘네가 좀 참고 살아라’는 말씀을 다시 떠 오른다.

‘방하착(放下着), 하심(下心), 소욕지족(小欲知足), 인욕(忍欲).’

곧 부처님의 말씀과 다름 아니다. 온갖 고생과 죄업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신 아버님은 무연대비(無緣大悲)를 실현하는 부처님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의 죄목 중에서 불효죄보다 더 큰 죄가 없으며, 공덕이 8만 4천여 가지가 넘는다 하나 ‘부모님 효양(孝養)’ 보다 더 큰 공덕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결초보은(結草報恩),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로써 어찌 부모님의 은혜를 보답할 수 있을까.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아버님 간병 때문에 미처 어머님 건강을 챙기지 못한 탓에 49재가 끝나기도 전에 어머님이 대수술을 받으셨다. 다시 어머님의 간병에 온갖 정성을 쏟았으며 다행히 건강을 많이 회복하신 상태이시다. 본가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 생각에 늘 가슴이 먹먹하다.


그때 분당 대광사(大光寺)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죄멸복생(罪滅福生)하시기를 빌고 또 빌고, 불효자를 용서해 주시기를……. 공양미를 올리며 아버님께 드리는 편지를 썼다.

“부디 극락왕생하셔서 못 다 하신 일 다 이루시고, 좋아하시는 약주도 많이 드시면서 즐겁게 사십시오. 부디 이 불효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힘드셨던 이승의 짐을 다 벗어 던지시고 행복한 날들이 되십시오. 어머님도 사시는 날까지 건강하도록 해 주시고 우리 형제간들 다 우애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큰 고비를 넘겼다는 잠깐의 안도감이 있은 후 이제는 나의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오랜 동안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지 않았으며 허리병과 다릿병 때문에 몸져누웠다. 게다가 만성적인 신경통증과 가슴앓이, 그리고 심한 어깨통증으로 계속되는 병치레를 했다. 그야 말로 종합병원이었다. 방바닥에 채 5분도 앉아있지 못하는 지경이라 대광사를 찾아 갔을 땐 양해를 구하고 의자에 앉아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장남으로서 5남매간의 우애를 다지기 위해 늘 중심을 잡고, 양보하면서 우리 집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그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내 마음을 잠깐 다스리지 못한 탓에 형제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다시 마음의 병을 얻는 큰 잘못을 범했다. 아직 마음자리를 바로 잡지 못한 죄를 또 뉘우친다.

대광사 금강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마음공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년 7월 16일(2박 3일)과 10월 23일(1박 2일)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 최대의 관음 영험 사찰인 구인사에서 산사 체험과 수련 시간을 가졌다. 구인사에서의 짧은 체류 기간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의 연속이었다.

장엄한 도량의 불가사의한 위세에 압도당했으며, 1천여 명이 넘는 불자들의 끊이지 않는 염송과 기도로 용맹정진하는 그 열기에 감복하고 부끄러웠다.

아직 참 불자가 되지 못했다는 통렬한 자성과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종정예하를 친견하면서 ‘마음자리를 잘 잡아라’는 짧은 법문을 들었을 때 숙연히 머리 숙였다.

들락날락하는 내 마음 속을 어찌 그리 잘 지적해 주시는지…….

온 몸의 통증으로 겨우 10분을 앉아 있지 못하는 지경이었지만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염불삼매(念佛三昧)에 집중하면서 그 동안 무늬만 불자였다는 부끄러운 심정이 들었다.

두 번째 구인사를 찾았을 때의 한 스님의 호방하고 열정적인 법문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러분은 이미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방에 있다”고 말한 스님은 우리 모두 이미 부처가 되었다고 설파하셨다. 이에 우리 불자들은 이제 모두 법사가 되어 수승한 종단의 도반으로서 올 곧은 믿음으로 우리 마음을 재무장 하자고 역설하셨다.

모든 중생은 부처의 성품을 지녔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참된 휴머니스트인 보살이 되어 불타는 집[火宅]이라 불리는 이 사바세계를 맑히는 것이야 말로 천태종도들의 지고(至高)한 사명임을 다시 깨달았다.

‘관음정진 백만독 릴레이 불사’ 와 ‘재가자 안거(安居)’에 수희 동참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죄송하다.

내 마음 속에 무위(無爲)의 도량을 세우고 일심청정의 참정진[正正眞]을 계속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자주 산사(山寺)를 찾아 부처님 뵙기를 큰 위안으로 삼는 한편 가슴이 꽉 막혀 있을 때나 마음과 정신이 어지럽거나 혼란스러울 경우에는 조용히 관세음보살을 염송한다. 나의 근기(根機)에 맞게 포켓용 예불문을 항상 지니고 틈틈이 펼쳐본다. 절에 갔다 오면 그 날은 마음이 편안하고 잠도 푹 잘 수 있어 부처님의 가피가 바로 이런 것이라 절감한다.

그동안의 교만과 허세를 벗어 던지고 진정한 자기를 담담하게 마주하고자 한다. 내 속에서 죽어가던 생명력과 자존감을 다시 싹 틔우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아직 잘난 척, 있는 척하는 아상(我相)조차 끊어 버리지 못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不欺自心)’는 가르침을 받들고자 한다.

내 인생의 진짜 무대는 아직 막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며 겸허하지만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 할 것이다.

나도 이제 인생에 대한 서정적 태도를 교정하고 변신의 몸부림과 정체성의 재발견으로 숨은 잠재력을 일깨워야 한다. 자신의 영혼 값은 스스로 매기는 것이라 했다. 바른 영혼을 가진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승리한다는 확신에 기초한다. 영혼이 맑으면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뜨거운 화로 속에서 금세 얼음이 녹아내리듯이 내가 지은 업의 습기가 날아가기를 빈다.

결승선을 달려가야 할 거리의 끝이라는 생각은 훌훌 털어 버리자. 눈앞의 일을 일념으로 살펴보자(現前一念)! 그러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회복될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없는 것을 보태는 일이 아니고 텅 비우는 노력이다.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수행이다.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하라.” 중도(中道)가 곧 부처다. 관용의 정신을 기르자.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후회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아예 접어 둔 채, 오직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소욕지족의 꿈을 서원하고 항상심으로 수행하자고 맹세한다. 매사에 진실하게 살면[卽事而眞] 만사형통(萬事亨通)이라 믿는다.

지금은 겨울이다. 겨울은 잔인하고 근엄하다고 하나 지난 일을 묻지 않는 너그러움 또한 간직하고 있다. 순백의 눈이 우리들의 허물을 덮어 주듯이 순종과 겸허로 우리의 근원인 우리의 영혼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혹한 속에서 굳어진 지심(地心)에는 항상 봄을 안고 있다. “청송(靑松)이 무거운 눈을 쓰고 차갑게 서 있는 건 형벌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시련에 불과하다”고 어느 원로 시인은 말한다.

내 안의 겨울 또한 나를 담금질함으로써 인동초(忍冬草)와 같은 강인함과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더욱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기상을 깨우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겨울은 때가 되면 지나간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 법이다.

‘중생염불(衆生念佛) 불환억(佛還憶)이라.’ 중생이 부처를 생각하면 부처님도 또한 우리를 생각하신다.

원의 힘(願力)을 키운다면 업의 힘(業力)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에 찬 의지적이고 창조적인 노력들, 즉 듣고[聞] 생각하고[思] 실행하는[行] 동안 반야(般若)를 배우는 발심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가피가 나와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기도라는 이름의 위성을 우주를 향해 올려보자. 그 쏘아올림엔 기술도 실패도 있을 수 없다. 그 기도가 필연이고 간절함이면 나 또한 부처가 된다.

“불퇴전이면 곧 성불(成佛)이다.”

넓고 큰 원(願)을 세우자!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을 탓하는 잘못을 이제는 다시 범하고 싶지 않다. 회심(回心)으로 그 동안의 삶의 질곡을 짊어지고 다시 한 번 꿈을 좇아 인생의 굴곡에 몸을 맡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길이 먼 데 있지 않느니라, 길이란 언제나 내 발 밑 가까운 데 있느니라.”
- 상월원각대조사님 법어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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